"제가 (소방관으로) 10년 정도 근무를 했는데 제가 들어왔을 때부터 구급차를 반드시 늘려야 한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아직까지 그게 안 되고 있어요."
"지금 119 상황실에서는 구급차 대신 펌프차를 내보내거나, 매번 관내의 다른 차량을 '돌려막기' 하는 식으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같은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보내고 있고요."
"이제 현실은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못 구하는 걸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게 오늘의 제 발표 주제입니다."
■ 우리가 119에 신고하면 구급차는 몇 분 안에 도착할까요?
급박한 심정지 상황이 발생했을 때, 1분 이내에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면 생존율은 97%입니다.
심정지 이후 4분만 지나도 생존율은 50%,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집니다. 그래서 심정지 '골든타임', 4~5분 정도입니다. 6분이 경과하면 다신 회복할 수 없는 뇌와 장기의 손상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1분이 늦어질 때마다 소생 확률이 10%씩 감소하고, 심정지 후 10분이 지나면 100% 사망이 거의 확실시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119에 신고했을 때 구급차는 평균 몇 분 안에 도착할까요?
작년 한해 전체 통계를 봤더니, 무려 10번 중 7번은 '골든타임' 안에 도착하지 못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입니다. 그러나 골든타임을 지키려는 현장 대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3년 간 5분 이내 현장에 도착해 환자를 이송한 비율은 30%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지체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 서울의 '구급차 돌려막기', 들어 보셨나요?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소방지부 소속 현장 소방관들이 직접 출동 사례와 구급 통계를 분석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시의회 "119 구급대 정책포럼"
서울은 각 자치구마다 소방서가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이동 거리가 짧으니 그래도 '골든타임'을 잘 지킬 수 있는 거 아닐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울은 오히려 구급차가 '항상' 심각하게 부족한 지역이었습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보면, 서울은 119 구급차 171대를 보유하고 있고요. 경상북도가 171대, 서울과 똑같습니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는 구급차가 273대 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시의회 "119 구급대 정책포럼"
서울특별시 전체 인구는 940만 명(올해 8월 기준), 경상북도는 256만 명 정도입니다.
인구 수가 약 3.7배 차이 납니다(이것도 서울의 6백 만 유동 인구는 제외한 수치입니다). 당연히 이송 건수, 서울이 훨씬 많습니다. 작년 서울의 전체 이송 건수는 33만 건, 경북은 11만 건입니다. 역시 3배 많습니다.
하지만 구급차 대수는 서울과 경북이 똑같습니다.
"서울 시민 5만 2천여 명당 구급차 1대가 배치돼 있습니다. 이 숫자로는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응급 상황의 수요를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구급차가 출동하면 현장에 도착해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응급처치와 진료 등의 조치를 해야 하고, 최단 거리 내 병원과 병상 여부를 확인해 환자를 이송해야 하고, 이송 후에도 환자가 병원에 완전히 인계될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런 대기 시간이 계속 길어지고 있습니다).
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대기 중인 구급차들
그래서 구급차가 한 번 응급 출동을 나가면 3~4시간씩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현재 서울 지역 구급센터 3곳 중 2곳은 구급차가 딱 1대 뿐입니다.
구급차가 출동 나가있을 때 다른 신고가 들어오면, 그때부터 다른 지역 구급차를 꿔오는 일명 '구급차 돌려막기'가 시작됩니다.
"구급차가 현장에 출동하면 해당 센터는 구급차가 없어 '관내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공백이 생긴 지역에서는 심정지, 뇌졸중, 중증 외상 같은 응급 상황이 추가로 발생하게 되면 관할과 상관없이 제일 가까운 구급차를 찾아 출동을 시켜야 하는데, 출동 거리가 멀어지고 교통 정체 등이 더해지면서 현장 도착 시간이 지연됩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유일한 구급차 1대가 나가면, 더 심각한 응급 상황이 생겨도 대응이 안 됩니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작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서로 깔리고 뒤엉켜 "살려달라"는 119 신고가 접수됐을 때, 현장으로 가장 먼저 출동한 구급차는 거리가 제일 가까운, 바로 옆 이태원 119센터의 구급차가 아니었습니다.
이태원 센터에 딱 1대 있는 구급차는 참사 직전인 밤 10시 5분, "낙상 사고로 머리를 다쳤다"는 다른 신고를 받고 출동해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밤 10시 18분, 이태원 현장으로 가장 빨리 출발한 구급차는 종로구 119센터 관할이었습니다. 참사 현장과 해당 센터는 약 6.4km 거리, 도착까지 24분이 걸렸습니다. 당시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6km 반경 내에는 '환자를 바로 태울 수 있는' 빈 구급차가 1대도 없었던 겁니다.
■ "강남에 구급차가 없어요"‥'응급 출동 최다' 10곳은?
대부분 센터에서 구급차가 1대 뿐이니까 출동 건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돌려막기'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9월 기준, 서울 지역 출동 순위 상위 10곳이 어딘지 볼까요.
119 구급 통계연보
구급차가 가장 바쁜 센터는 강북 우이, 다음이 강남 영동, 마포 서교 순이었습니다. 10곳 중 4곳이 강남구 관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