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복지대학 사회복지학부 교수이자 사회복지사 후지이 와타루. 전공은 장애인복지론이며, 오사카정신의료인권센터 면회 스태프로도 일하고 있다. 그는 돌봄 현장에서의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것은 사람에게 상처 입히는 일과 반대의 영역에 있다고 말한다. (제공-후지이 와타루)
전쟁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 사회에서 ‘쓸모없음’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더욱 더 첨예하게 배제한다. ‘쓸모없음’의 사상은 어떤 경위로 생겨났을까. 목숨을 선별하고 생명에 가치를 매기는 사상에 맞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셜워커를 위한 ‘반(反) 우생학 강좌’-‘쓸모없음’의 역사에 저항하는 복지실천』(2022)의 저자 후지이 와타루(藤井渉) 씨에게 들었다. 사회복지사인 후지이 와타루 씨는 일본복지대학 사회복지학부 교수이자, 오사카정신의료인권센터 면회 스태프로도 일하고 있다. 다음은 그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누구에게 ‘쓸모없음’인가
‘쓸모없음’의 사상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그 ‘쓸모없음’이 ‘권력자’에게 있어서의 ‘쓸모없음’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전쟁 전과 전쟁 중의 권력자는 군부이지만, 지금은 그 권력이 재계나 글로벌 자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전쟁 전, 전쟁 후에는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된 징병제가 있었습니다. 징병검사 결과 ‘갑-을-병-정’이라는 등급이 매겨지고 국민이 서열화되었습니다.
검사 기준을 군부가 설정했기 때문에 때마다 군부의 의도에 따라 기준이 바뀝니다. 1차 세계대전 후 군축 시대에는 징병검사 기준이 엄격해지고 갑(甲) 등급 합격자가 적어졌지만, 반대로 중일전쟁이 시작되어 많은 병사가 필요해지자 검사 기준이 상당히 완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검사 기준은 ‘무엇이 건강한 것이고 무엇이 건강하지 않은 것인가’라는 개념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丁) 등급 불합격자는 가장 건강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병(丙) 등급은 일단 합격이지만 허약해서 전투력으로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의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가정책이 만들어지고 실시됩니다. 이들의 허약한 체력의 이유 중 첫 번째는 당시 문제가 되던 결핵입니다.
사실 일본 근대산업의 ‘노동자’로서 대표적인 사람들은 농촌 지역에서 도시로 돈을 벌러 온 소녀들, ‘여공’이었습니다. 그녀들은 전차금 명목의 빚을 지고 일했기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36시간 연속 노동을 강요당하는 등 강제노동 같은 형태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핵을 앓으면 농촌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농촌에 결핵이 만연합니다. 농촌은 좋은 병사를 생산하는 곳이기 때문에 군부는 농촌에서의 결핵 유행을 문제시하고 대책을 시행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구)국민건강보험법(1938)입니다. 이는 젊은 의대생들이 주축이 되어 추진했던, 빈곤층과 의료가 정비되지 않은 지역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 사회화 운동’을 군부가 이용한 형태였지만, 어디까지나 군부에게는 건강하지 못한 국민을 건강하게 만들어 전쟁의 인적 자원으로 삼겠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이자 일본복지대학 사회복지학부 교수인 후지이 와타루 씨의 저서 『장애란 무엇인가-전투력이 되지 않는 사람의 전쟁과 복지』(2017), 『소셜워커를 위한 ‘반(反) 우생학 강좌’-‘쓸모없음’의 역사에 저항하는 복지실천』(2022)
또 하나는 국민체력법(1940)입니다. 이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주로 결핵을 예방하기 위한 법으로, 검진을 하거나 ‘국민체력 지정의’가 주치의가 되어 건강을 지키는 구조입니다. 산림학교(결핵을 예방하기 위해 산간에 초등학교 등을 지어 운영함)를 세우거나 보건소도 정비되었습니다.
한편, 정(丁) 등급의 징병검사 불합격자는 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병(丙) 등급 대책이란, 국민우생법(1940)을 만들어 장애가 있는 국민의 출생 자체를 방지하자는 것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취로면제’라는 명목으로 공교육으로부터도 배제했습니다. 이러한 대책들은 인클루시브교육(장애통합교육)이 칭송되는 현재에도 형태를 바꿔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같은 장애인이 아니다, ‘상이군인’과 ‘산업전사’
전쟁 중에는 같은 장애인이어도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과 징병제에 합격해 병사가 되었다가 장애를 입은 사람 사이에 서열이 있었습니다. 다친 병사를 ‘상이군인’으로 부르며, 당시 ‘불구’라고 경시되던 장애인들과 엄격하게 차별화하였습니다. 상이군인은 국가에 쓸모가 있었다는 점에서 후하게 보호하고, 지역에서도 ‘살아있는 영령’처럼 대우받았습니다. 단, 상이군인 중에서도 병사일 때의 계급과 전투에서 장애를 입은 것인지 등의 부상 이유에 따른 서열도 있었습니다.
한편, 산업에 공헌한 결과 장애인이 된 사람에게는 ‘산업전사’로서 노동자연금보호법이 적용되었고 1944년에는 이 법이 후생연금보험법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여성의 산업 동원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개정이었습니다.
후생연금보호법 하에 장애등급표가 만들어져 전쟁 후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후에 만들어진 신체장애인복지법(1949)에서의 장애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법률은 원래 상이군인 등 일부 사람을 위한 시책이었던 것이 훗날 민주화와 비군사화의 역학관계 안에서 장애인 일반을 대상으로 하게 된 점은 평가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제된 여성들, 지워진 여성의 역할들
지금의 복지제도 성립의 역사를 보면, 전쟁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 많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온 것이 바로 여성입니다. 징병제도의 서열도 남성의 서열이고, 장애 중에서도 선천성 장애는 후천성 장애보다 아래로 취급받았는데, 여성장애인은 그 존재조차 역사에서 지워져 있습니다. 한편으로 여성은 상이군인을 돌보는 역할과 여공, 광산노동력 등으로는 적극적으로 거론되며 편의에 맞춰 동원되어 왔습니다.
어떤 목숨이 사회에서 ‘쓸모없음’으로 간주되는가. 누구에게 ‘쓸모없음’인가. 사회복지사 후지이 와타루 씨는 ‘쓸모없음’의 사상에 저항하며, 장애와 복지와 돌봄에 대해 접근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여성을 배제한 구조 하에 1948년에 만들어진 우생보호법으로 인해, 많은 여성장애인이 강제불임수술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전후에 많아진 장애인 돌봄 책임 역시 여성에게 강요했습니다. 한편으로 그러한 고난에 저항하면서도, 전후 장애인의 생활을 지원하고 일한 사람들 역시 여성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쟁의 반대는? 돌봄이다
앞으로는 권력자가 쓰는 ‘공생’이나 ‘다양성’이라는 단어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단어들은 생물학적 단어로 우생사상(인류의 유전자 품질을 높이는 것을 추구하는 사상)과도 친화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돌봄 현장에서도 일하고 있는데요. ‘쓸모없음’의 사상에 저항하는 데에는 돌봄 현장의 가치관과 각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중증 행동장애가 있는 분의 외출을 조력한 적이 있습니다. 시설에서의 자유롭지 못한 생활에 대한 반동인지, 외출을 나가자 도전행동이 많아졌고 저와도 전혀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년 반이 지난 후, 함께 외출한 곳에서 첫눈에 뒤덮인 산을 보자 “눈이 예쁘네, 예쁘네”하고 처음으로 먼저 말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결국 인간관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동시에 내가 ‘행동장애’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그 사람 자신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현장에서의 깨달음은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봄 현장에서의 깨달음은 육아의 현장에도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사람에게 상처 입히는 일과 반대의 영역에 있습니다. 그 영역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넓혀가는 것이 복지 실천의 보람과 연결되고, 실은 전쟁에 저항하는 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