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역사 -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현대
[전통주] 한국 시대별 술의 역사 -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현대

술린이들이 알기 쉬운 전통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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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술의 역사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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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술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술이 찬란했던 시기와 쇠퇴한 시기, 그리고 다시 살리려고 노력한 시대를 함께 알아보시죠.
1. 한국사 시대별 술_조선시대
조선시대는 유교와 예가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술과 관련해서는 '술로 예를 이룬다'고, 각종 세시풍속에 술을 곁들이며 예를 차렸죠. <종국조오례>에서는 여러 의례에서 술을 사용하는 방법이, <농가집성>에서는 누룩을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한국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서는 좀 더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빚은 누룩은 막누룩이라고 합니다. 영조 때의 <중보산림경제>에는 누룩 만들기 길일이 나오며, 진면곡, 요곡, 녹두곡, 미곡, 추모곡, 이화주법 등의 누룩의 종류에 대해 서술합니다.
누룩의 재료는 밀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쌀, 녹두, 보리 순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밀은 거칠게 빻아 사용했고, 쌀은 고운 가루를 내어 사용했는데, 쌀알맹이에 밀가루를 붙여 만든 것도 있습니다. 녹두는 불려서 갈아서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누룩은 거의 날것의 곡물을 사용해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누룩 틀에 넣어 밟는 형태로 제작했고, 대부분 막누룩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대한제국시대에는 곡자를 제조하는 시기에 따라 춘곡, 하곡, 절곡, 동곡으로 나누었습니다. 용도별로는 탁주, 약주, 소주, 과하주용으로 나뉘었구요. 원료를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조곡과 분곡으로 나뉘는데, 분곡은 밀가루로 만들어 과하주나 약주를 만드는 데 사용했습니다. 밀가루로만 만든 누룩은 백곡이라 합니다. 조곡은 밀가루와 밀기울을 함께 써서 만들었으며, 보통 탁주와 소주를 만드는 데 썼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누룩 제조 방법이 다양해졌고, 찹쌀을 사용하게 된 시기입니다. 쌀 원료 처리하는 방법도 다양해졌습니다. 떡, 죽, 밥 등 다양하게 만들었죠. 덧술을 하여 만드는 중양주 양조법도 적용됐습니다. 속성주(단양주), 일반주(이양주), 저온장기주(삼양주)에 십양주까지 나왔으니까요.
조선시대 유명한 명주는 경기도 삼해주와 약산춘, 충청도 소곡주와 노산춘, 평안도의 벽향주와 감홍로, 영남지방의 과하주와 송엽주, 호남지방의 호산춘과 두견주 등이 있습니다.
2. 한국사 시대별 술_일제강점기
조선시대 때 찬란하게 꽃피웠던 술 제조 문화는 일제강점기때 쇠퇴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술에 세금을 물지 않았고, 각 가정에서 술을 많이 빚었기 때문에 술 종류가 다양했어요. 하지만 1909년 2월 경, 주세령이 발포되면서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재정권을 쥐고, 전통 문화를 파괴하기 위해 만든 전략이었는데, 이로 인해 한국에서 전통 가양주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강압적인 일제로 인해 일본식 술이 성행했는데, 민간에서는 밀주를 남 모르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1916년 주류 단속을 강화하면서 모든 술이 소주, 약주, 탁주로 획일화되었습니다. 일제식 개량 주조법이 1920년대에 의무화되면서 황국은 사케 제조에, 흑국은 소주 제조에 이용되었어요.
1934년 자가용술 제조면허제도가 폐지된 해로, 각 지역별 다양한 술이 사라지는 시기가 되었죠.
3. 한국사 시대별 술_현대
1945년에 해방되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도 일본의 잔재는 남아있었습니다. 1964녀부터 쌀 사용이 금지되면서 밀가루와 옥수수로 만드는 술만 가능했으며, 알코올 도수, 첨가물의 종류, 술 용기까지 규제가 심했습니다. 대량 생산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아스퍼질러스 가와치를 배양한 입국을 사용하며 술 제조 방법이 획일화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탁약주 원료 규제를 완화했고, 다양한 첨가물(약재, 주정 등)의 사용을 허용했으며, 알코올 도수 제한이나 공급구역 제한을 없애는 등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여기까지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술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은 또 다른 유익한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